Page 152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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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파문당했다. 센쇼가 대승비불설을 제기한 배경에는 에도시대에 불
교에 비판적이었던 일본 내 사상가들의 영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메이지
이후 유럽의 근대적 연구방법론이 일본에 도입되면서 유럽의 시각이 근
저가 된 것이다. 당시 센쇼와 동일한 입장을 취한 이들로는 아네사키 마
사하루姉崎正治(『불교성전사론』, 1899)나 마에다 에운前田慧雲(『대승불교사론』,
1903) 등이 있었다.
센쇼에 대한 대표적인 평가는 근대적 학문체계로부터 불교를 바라본
학자라는 점이다. 더해서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와는 시각이 대비되는 정
점에 서 있던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로 센쇼의 대승비불설과
비견해 엔료는 석가모니가 대승불교를 설파한 것은 아니지만 철학적으
로 뛰어나다고 하여 대승불교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일본불교의 특징은 종교적 신앙의 발전
『불교통일론』 발간 이후 센쇼는 일본불교사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
들을 총망라한 일본불교의 특색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물론
1890년에 발표한 『불교일관론佛敎一貫論』이나 『불교충효론佛敎忠孝論』
(1893)에서도 일본불교의 특색에 대해 언급했지만 1900년 이후 보다 체
계화되었다. 그는 일본불교의 특색을 기술하기에 앞서 인도와 중국불교
의 특색을 언급한 이후 일본불교와의 상이점을 설정했다. 근세 이후 일
본의 연구자들이 조선불교(한국불교)를 언급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센
쇼 이전에도 존재했다. 한국불교가 전체 불교사 성립에서 사라지게 된
일명 조선불교 패스론에 대해서는 향후 기회가 되면 다시 소개하겠다.
센쇼에 의한 불교의 발전은 크게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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