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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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에서 인명因明과 유식을 강의한 것이
인연이 되어 1887년, 도쿄의 조동종대학
(현 코마자와대학)에 교사로 초빙되었다.
이후 학문적 성과가 컸던 철학관哲学館(현
동양대학)의 강사를 거쳐 도쿄 오타니교 교
장(1890), 제국대 문과대학 강사, 정토종
본교 강사(1892)가 되었다. 특히 센쇼는 철
학관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을 때, “이것
사진 1.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 사진 위키
으로 세계무대에 나간다는 생각에 잠겼 피디아.
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가 말한 새로운 세계무대는 당시 철학관에
서 개설한 서양철학 강좌로, 센쇼는 이들 강좌를 청강하면서 서양의 근
대학문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상
했다.
“도쿄의 공기를 마시자마자 시세時勢라는 술에 취한 나는 이노
우에井上 군이 철학관을 연다는 말을 들었다. 나 스스로가 강사
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학생이 되어 철학이라고 하는 서양학문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
각이었다.
철학관에서의 내 강의는 일주일에 2시간이었지만 다른 강의를
듣고 싶어서 매일 통학했다. 철학관의 수업들은 오후였기 때문에
오전에는 조동종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철학관에 가서
철학사, 논리, 심리 등의 강의를 청강했다.”
무라카미 센쇼의 자서전 『61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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