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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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7호 | 풀어쓴 『선문정로』 2     선문의 궁극적 목적이 견성에 있

                                             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가? 본성이라고 불리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어서 어느 순간 그것을 보게
             절대 무심이 견성이다                     되는가? 참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에 성철스님은 보다 확실한 기준을
                                             제시한다. 구경무심이라야 견성한다
              강경구
              동의대 중국어학과 교수                   는 것이다. 그러니까 견성은 무심의

                                             실천과 성취로 일어나는 최후의 사건
                                             인 것이다. 그래서 『선문정로』의 ‘견
                                             성즉불’ 설법은 견성이 무심의 완전

                                             성 여부에 달려 있음을 역설한다.



                                               절대무심이 견성



                                               왜 절대 무심이라야 견성인가? 다

                                             이유가 있다. 삶은 덧없는 무상이자
                                             한결같은 불만족 그 자체이다. 그래
                                             서 우리는 종교를 기웃거리고 불교

                                             를 만나게 된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

               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은 갈망의 가속페달을 밟아온 우리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
               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         를 향해 일단 멈춤의 신호를 보낸다.
               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          신호에 멈출 줄 안다면 그는 좋은 운
               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전자다. 그렇게 멈춰보면 스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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