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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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꽃으로 우주를 들다
다시 생각해 보자. 선종의 종지는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보이고(直指人心),
본성을 보아 부처가 되는(見性成佛) 일에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보이는 일인가?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가섭에게 보여주고 가
섭이 미소 지었다. 직지인심의 꽃에 견성성불의 미소가 도장 찍듯 만난 것
이다. 선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개벽적 사건
이다.
문제는 스승과 제자의 쿵짝이 이처럼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데 있다. 왜 그런가? 꽃을 들어 올리는 일은 누구나 지어 보일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 행위이다. 그것은 움직이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일상
의 행위와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가섭은 여기에 미소 지었다. 그렇다
면 가섭의 눈에는 부처님의 모든 행위가 다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보이는 일
이었다는 말이 성립한다. 왜 아니겠는가?
부처님은 꽃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행위로 부처님의 마음, 우주법계 전
체를 들어 보여주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식사
하고, 그릇 씻고, 꽃 피고, 잎 지는 일을 통해 직지인심의 꽃을 들어 올리
고 있다. 오직 이에 미소로 답해야 할 중생들만이 멀뚱멀뚱 눈을 껌벅이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이다.
명백하게 들어 올려진 부처의 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눈에 백태나 티끌
과 같은 무엇이 끼었기 때문이다. 부처의 꽃을 바로 보려면 바른 눈을 회복
해야 한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수행은 오로지 눈에 낀 이 백태와 티끌을 씻
어내는 일에 집중된다. 이를 위해 탐욕(貪), 분노(瞋), 오만(慢), 어리석음(痴),
바르지 못한 견해(惡見)의 덩어리 티끌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허다한 조각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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