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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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에 90리를 지났다 해도 신발끈을 다시 매고 새롭게 출발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모범을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가 인정한
선정의 성취를 내려놓고 까마득히 모르는 자리로 새롭게 나아갔다. 그리
하여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사라진 진정한 무심의 자리에 나아가 진여와
하나로 만난다. ‘각종의 유심有心이 다 없어져 탈 수레도 탈 사람도 없고 무
심이란 명칭까지도 붙을 자리가 없는 그런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니
까 성철스님에게 무심과 견성은 동의어다. 오직 무심이라야 견성한다. 이
에 비해 어떤 기특한 견해, 어떤 기이한 체험이라 해도 유심의 차원이다.
그것에 도취되어 머무는 일이 없어야 하는 이유이다. 성철스님은 말한다.
“혹 참선을 하다 나름대로 기특한 견해가 생기고 기이한 체험을 하
더라도 그걸 견성으로 여겨 자기와 남을 속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
고 한 올의 터럭, 한 방울의 물이라 여겨 아낌없이 버리기를 간곡
히 당부한다.”
군말이 길었다. 『선문정로』의 첫 설법주제인 견성즉불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성철스님은 선문의 대종사답게 견성즉불, 즉 ‘견성하면 곧 부처’라는
주제로 『선문정로』의 설법을 시작한다. 그런데 스님은 본성(性)을 보는(見)
일을 말하는 대신 전체 설법을 무심의 완전성에 대한 강조에 집중한다. 그
래서 구경무심론은 『선문정로』에 제시된 성철선의 가장 두드러진 종지의
하나가 된다. 그것은 성철스님이 실천한 간화선이 무심의 길을 걸어 구경
무심에 이르는, 그야말로 방법과 목적에 있어서 무심으로 관통하는 수행
법이었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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