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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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연구의 시작에 대해, “교키行基와 보살정신이
란 논문을 쓰던 중 대승의 보살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역대 천황제와 신앙」, 1946)나, “나카무라 하
지메 선생님의 권유로 불교의 사회구제사업의 초문
을 쓰면서부터이다. 교키와 에이손叡尊 연구는 일본
의 계율 연구의 방향성을 찾는데 결정적이었다.”(「내
가 걸어온 길」) 등에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진 2. 저서 『일본인과 지옥』(1998).
교키에서 신란까지, 일본불교의 계율 연구
종합해 보면 이시다의 계율 연구 시작점은 사회복지사업, 교키, 에이손
등으로 압축된다. 이것들이 잘 드러난 논문이 「자비와 구제-승속일체의
자각과 실천」(1954)으로, 이시다는 『대세계』에 5회에 걸쳐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의 핵심은 사회와 승단의 관계 규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출가와 재가
의 구별이 존재하는 한, “사회는 경제적 원조나 법제적 규제를, 교단은 포
교와 구제라는 상호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이시다는 일
본에서 승속의 이념과 존재, 승단과 사회의 관계는 “그러한 언급과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 예로 교키·사이쵸·구야空也·신
란·에이손 등의 실천 활동을 일례로 들었다.
이시다는 쇼도쿠태자聖德太子의 ‘승속일체무차별 이념’이 승니령과 사분
률에 의거한 수계로 인해 사라졌다고 보았다. 이를 교키·사이쵸·구야가
승속일체의 보살정신을 발휘했고, 신란에 이르러 승속 차별이 완전히 부
정되었다고 기술했다. 반면, 에이손은 승僧의 위치를 고집해 승속 일체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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