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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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매이지 않고 정신성을 중요시한 일본불교야말로 대승불교의 진의를 발
             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 대세였다. 이러한 불교계의 입장을 당시의 연구
             자들이 함께 공유했고, 그 결과 전후의 일본불교 연구에서도 계율 경시가

             재강화되었다. 그 유명한 부파불교 교단과는 별도로 재가를 기원으로 하

             는 대승불교 교단이 성립했다는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설 역시 이러한 배
             경에서 나왔다.
               이시다 미즈마로石田瑞麿(1917~1999, 이하 이시다)는 굳이 분류하자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계율 연구자에 포함된다. 이시다 이전에도 계율연구는 진

             행되었다. 물론 앞에서 메이지 이후 계율이 경시되었다고 언급했지만 이
             는 연구의 질이 아닌 연구자층이 얇았다는 의미가 크다. 우에다 텐즈이上

             田天瑞의 『계율 사상사』(1940)나 에타니 류카이惠谷隆戒의 『원돈계 개론圓頓戒
             槪論』(1937) 등은 계율을 통시적 관점에서 저술한 대표적 연구서이다. 이들

             은 고대부터 혹은 중국 천태종에서부터 일본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대승계
             를 서술했다.
               특히 우에다와 에타니는 일본의 대승계를 서술할 때 사이초最澄와 감

             진鑑眞을 공통적으로 언급해 일본불교가 인도-중국-일본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각은 정토진종의 시마지 모
             쿠라이島地黙雷 이래 일본불교의 정통성을 인도-일본으로 본 관점과 유사
             하면서도 그 결은 다소 차이가 있다.




                전후 계율 연구자 이시다


               전후의 계율 연구자인 이시다 미즈마로는 독특한 지점을 가진 연구자이

             다. 그는 자신의 자전적인 글에서 “연구 생활을 돌이켜보면 세속적이고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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