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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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8호 |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15 | 계율은 불교의 실천이라는 측면에
이시다 미즈마로 石田瑞麿
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만, 전후戰
後의 일본불교 연구에 있어 연구자들
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아니었다.
여기에는 메이지 이후 일본에서 계율
일본불교 이 종교상의 의미를 거의 상실했다는
계율연구의 대가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메이지 이후 계율 경시 풍조
지미령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1872년(메이지 5), 육식대처령肉食帶
妻令 포고 이후 각 종단에서는 육식과
대처가 일반화되었다. 일찍이 대처
를 제도화한 정토진종이 여타의 종파
보다 빨리 근대화에 성공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다른 종단들이 재가주의
적 신불교 세력을 확장한 것 역시 계
율에 대한 무관심을 심화시켰다.
더해서 메이지 이후 서양의 불교
학이 유입되면서 일본불교는 일본 이
지미령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 외의 불교권에 대한 실태를 파악할
수. 일본 교토 불교대학에서 일본미술사
수 있었지만 이를 통해 계율의 중요
를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천대, 동국대 등에 출강했다. 현재 아
성 혹은 계율로 복귀하자는 목소리는
시아 종교문화 교류에 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번잡한 계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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