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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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양상과 변질, 가마쿠라시대 정토교의 계율 이해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특히, 사이쵸가 도선道璿의 영향을 받았
             다는 도키와 다이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승강제

             도로부터 이탈해 독자적 교단을 만든 것 등으로 미루어 교

             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자신만의 설을 정립시켰다.
               『일본불교의 계율 연구』 발간은, 혹은 이시다의 새로
             운 학설은 당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쯔치하시 슈고土橋秀高는 『불교학연구』(1964)를 통해 이                  사진 5. 『신란 전집』(1985-1987).

             시다 설을 실질적으로 반박했다. 쯔치하시의 반박을 요약하면, 첫째, 사이
             쵸의 계율을 『화엄경』의 영향으로 보았으나 사이쵸의 계율관에는 화엄사
             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둘째, 사이쵸가 주창한 원계圓戒의 독자성이 충

             분히 설명되고 있지 않다. 셋째, 전수염불과 계율이 통일되지 못한 설명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이외에도 요시다 야스오吉田靖雄는 이시다가 주장
             한 교키와  『범망경』을 재검토하는 등의 이시다 설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
             이 진행되었다. 이시다의 계율 연구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미완으로 끝났

             다’이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연구 스탠스에서 추정할 수 있다. 자신의 주

             요 연구 분야인 신란과 계율 연구를 철저히 분리해 신란 연구에서는 계율
             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계율 연구에서는 신란을 배제했다. 이는 두 분야
             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시다에게 있어 신란의 계율

             은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미완의 계율 연구’는 이시다의 긴 숙고와 위의 문제들을 언급하지 못한 채
             삶이 마감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미완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다의 계율 연구는 이전 세대의 계율 연구의 틀에서 일보 전진한, 비승비속

             의 실천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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