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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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목공예승 등 여러 분야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예배의 중심인 불상을
만드는 조각승과 불화를 그리는 화승의 활동이 핵심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조선 후기 조각승은 천여 명이고, 화승은 이천 사백
여 명에 이른다. 당시 승려 장인이 불교계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체계를 갖춘 분업방식으로 일을 해 나갔는데, 공동체를 기반으
로 한 집단 방식으로 같은 무리의 스승과 제자 또는 동료들은 일정한 양
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축적된 기술과 역량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서
마치 선승들이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법맥을 이어가듯 자신들의 계보를
만들었다.
승려 장인들의 작품세계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의 승려 장인>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시
가 있었고 전시 내용 중 특별한 몇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용문사 대장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그 뒤쪽에 배치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1684년 단응端應을 비롯한 조각승 아홉 명이 제
작했다. 구품왕생으로 도달하는 서방 극락정토의 환상적인 광경을 나타냈
는데, 조각의 섬세함과 금빛 찬란한 웅장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경
외감에 빠져들게 한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하단의 화기畫記에 따르면, 그해 가을 용문사에
서 삼존상과 후불목탱(대미타회후불상)을 조성하였다. 대표 조각승인 단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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