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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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글을 한 호에 투고한 양상이 드러난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중앙불전
          교강사진, 즉 박한영, 강전준웅(에다 토시오), 김영수, 김경주, 박윤진 등이
          주요 필진으로 등장하였고, 7호 이후에는 당시 중앙불전 재학생이 일부 동

          참하였다. 정작 표훈사 주변의 인물이 투고한 예는 최원허를 제외하면 거

          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인근 사찰인 유점사의 경성포교소 포교사인 변
          설호의 짧은 글인 「보원거사의 출세」(8호)가 있을 뿐이다.
           이외에 백양환민의 「금강산 초대면初對面」(5호)과 백초월(1878~1944)의

          「불법중요佛法中要를 소개함」(6, 7호)이 있다. 백양환민은 권상로가 『불교」를

          주간할 때 「한라산순례기」(69-79호, 1930.3~1931.1)를 연재한 인물이다. 아마
          민족주의 계열의 문화사학자인 것으로 판단된다. 백초월은 당시(1936년) 월
          정사 강원의 강사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을 볼 때 『금강산』은 논설이나 수필을 막론하고 중앙불전 교수진의

          투고와 최원허의 발행 관련 소감문이 큰 틀을 형성하고 있고, 중앙불전 재
          학생이나 소수의 외부 필진이 일부 참여한 형국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필진의 분포에 따라 잡지는 글의 다양성과 시대적 담론의 수용

          에 매우 취약한 구조적 특징을 갖게 되었다. 금강산 관련 전설, 불교 경전

          의 근거, 불교적 해석 등 잡지가 지향하는 금강산의 내면을 독자들에게 전
          달하기 위한 학술적 기획은 일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필진 자체가 학자
          위주여서 금강산의 현장성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금강산의 본래면목 발굴


           잡지가 표방한 지향은 2호에 실린 「금강산불교회 취지서」에 잘 드러나

          있다. ‘오늘날’ 세계적 명산으로 소개되면서 세인들이 드나들게 되고 여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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