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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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회합이나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창립회의에서는 김태흡 저술로 간행

                                       된 『보덕각시연기』와 『법기보살연기』와

                                       권상로가 주간한 『금강산』(이상 표훈사·
                                       금강산사 간행)이 모두 ‘본회의 사업’임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미 잡지 창간 이전부

                                       터 최원허와 권상로, 김태흡은 밀접한
                                       논의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였음이 드러
          사진 4. 책 광고(2호).
                                       난다.  안진호는  권상로와  대승사에서
          인연을 맺은 인물로 불교사 자료를 발굴하여 사지를 편찬하는 데 진력했

          던 인물이다.
           권상로, 안진호, 김태흡은 1935년 발행한 근대불교의례서 『석문의범』의
          제작에도 함께 참여한 바 있다.(안진호 편, 권상로 김태흡 교정, 권상로 서문) 단

          순하게 말하면 표훈사 주지 최원허가 교계 문화활동의 핵심에 있던 권상

          로에게 전적으로 의뢰하여 잡지 발행을 진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금강산』은 표면적으로는 지역 잡지지만 실제로는 경성의 명망가가 중심
          이 되어 제작한 것으로서 중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권상로는  1910년대  불교잡지(조선불교월보)의  발행인이며  1924년부터

          1931년까지 발행된 『불교』지의 발행인으로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던
          인사다. 불교잡지 발행을 그만둔 해부터는 중앙불전의 교수로서 후학을 지
          도하면서 학계와 언론계의 주역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1933년 7월 대표적인 불교기관지 『불교』가 종간되었다. 1930년대는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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