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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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金剛山) / 金剛山創刊號 - [00018_0001_0002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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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 금강산 안내도(1호).                                                        22. 5. 9. 오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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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산 대중관광이 본격화되었다. 1931년에는 탐승객이 15,219명, 1932년에

          는 24,892명으로 늘어났고, 1933년에는 4만 명에 이르렀다. (이경순, 「1930
          년대 중반 불교계의 『금강산』 잡지 발간과 그 의의」, 『불교학연구』 51집, 불교학연구회,

          2017, pp.162-163 발췌 인용)
           7, 8시간이면 경성에서 금강산의 안쪽까지 도달하여 온천을 즐기고 차
          를 마시며 온갖 오락을 즐길 수 있는 대중관광의 시대에 금강산은 한국 고

          유의 신앙과 불교 신앙의 성지가 아니라 관광지이자 신사나 교회수련관이

          세워진 복합공간으로 변해 갔다. 이는 산내에 주석하고 있던 승려는 물론
          이고 불교계 지성들의 역사와 문화적 인식에 생채기를 내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금강산의 유명사찰 표훈사 주지 최원허는 금강산에 내재

          한 불교 사상과 문화를 외부에 알리고자 잡지를 창간한 것이다. 따라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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