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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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측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는 아편이라고 몰아붙이는데, 이는 종
             교를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나 반종교운동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어 교회와 사원이 자본주의 제도의 숭배자이자 옹호자로서 민중의 자

             원을 착취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의식을 마비시키는 독소를 뿌린다고

             비판하며 타락과 부패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 대해, 이는 감정적으로 싫
             어하는 것일 뿐 생활을 규정하고 이끄는 이론적 기제로 나온 것이 아니라
             고 반박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의 본질

             적 관념 형태가 아닌 형식과 제도상의 결함인데, 반종교 이론이 과연 비판

             대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하고 있는지 또 정연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
             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허영호는 1937년 3월부터 1939년 1월까지 중앙교무원의 기관지 역할을

             한 『신불교』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 그는 이 잡지에 「교단의 미래를 전

             망하면서」 등 여러 편의 글을 기고했는데, 새로운 불교는 전통적 종파의 부
             활이 아니라 붓다의 교법에 의지하면서 시대를 이끌 수 있어야 하고, 현대
             인의 생활 요구에 해답을 주고 만족을 주어야 한다고 갈파했다. 하지만 전

             시체제가 강화되면서 「지나사변과 불교도」 같은 권두언을 써서 신앙 보국

             과 징병 등을 주장했다. 특히 「대동아 전하戰下의 화제花祭를 맞아서」(『신불
             교』 36(1942)), 「시사-결전 제2년과 새로운 불교에의 구상을 맞아서」(『신불교』
             47(1943)) 등의 글을 통해 대동아의 공영을 위한 전쟁에 불교계가 적극 협

             력해야 함을 주장했고, 대동아와 관련해 남방불교에 비해 북방불교(대승

             불교)의 우수함을 강조했다.
               그가 『신불교』에 실은 글 가운데 학술 연구의 성과와 관련된 것을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범한조  대역)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  주석」(『신불교』
             1-4·6(1937)), 「역경의 급무(불경의 본의, 역경과 포교, 역경과 조선 문화)」(『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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