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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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큰스님이 넙죽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백운단 선사가 “우리가 이별한
          지 몇 해나 됐는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4년 되지. 이 집에서 3년이요,
          이 집에 오기 1년 전에 백련장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 않았던가.”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을 말하자 백운단 선사는 아주 깊은 법담法
          談을 걸어 보았습니다. 법담을 거니 병에 담긴 물이 쏟아지듯 막힘이 없이
          척척 받아넘기는데,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법담은 장황하

          여 다 이야기 못 하지만 『전등록傳燈錄』 같은 불교 선종 역사책에 자세히 나

          옵니다. 이것이 유명한 귀종선 선사의 전생담입니다.
           그 후 6년이 지나자 식구들을 모두 불러 놓고는 “본래 네 집에 6년만 있
          으려 하였으니 이제 난 간다.”고 하고는 가만히 앉아 입적했습니다. 이처

          럼 자유자재하게 몸을 바꾸는 것을 격생불망隔生不忘이라고 합니다. 아무

          리 전생, 후생으로 생을 바꾸어도 절대로 전생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남악혜사 스님의 삼생담三生談



           중국의 역사책인 『당서唐書』에 나오는 것으로, ‘이원방원관李源訪圓觀’이
          라 하여 이원이라는 사람이 원관이라는 스님을 찾아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라 안록산의 난리(755~763) 때 당 명황唐明皇의 신하 중에 이증李澄이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원은 그의 아들입니다. 이증은 당 명황이 안록산
          의 난리로 촉나라 성도로 도망갈 때 서울인 장안長安을 지키라는 왕명을 받
          고 안록산과 싸우다 순국했습니다. 뒤에 국란이 평정되고 환도한 후 나라

          에서 그 아들인 이원에게 벼슬을 주려 했으나 그는 도를 닦겠다고 하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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