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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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과 밴 플리트 사령관과 면담
그리고 그 분이 범어사를 나가시고 나는 남았어요. 돌이켜보니 내가 고
향에서 어려운 살림을 산 사람이란 말이요. 비 오면 뭐 빨랫줄 걷어 들이
는 것도 알았고, 불전 의식儀式도 했지요. 말하자면 폭이 넓은 셈이었어요.
그런데 소위 비구와 대처의 마찰이 첨예하게 나타난 데가 범어사예요. 그
러다 보니 공부보다는 소용돌이에 말려 사건을 일으킨 게 가장 큰 일인 것
같았어요. 좌우간 그해 양력 설 쯤인데 다들 나가고 아무도 없어요. 주지
스님도 안 계시고, 우리 (운허)스님은 벌써 나가셨고. 그런데 이승만 대통
령하고 유엔군의 밴 프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사령관이 찾아왔어요.
밴 플리트 유엔군 사령관을 말씀하시나요?
그런 사람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범어사에 왔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안내를 했어요. 내가 범어사 안내를 다 한 뒤에 누가 그래요. “대통령 각하
께서 모처럼 오셨는데 건의사항 있으면 하라.”고 그래요. 내가 그 뭐 20살
짜리가 뭘 안다고 “국가가 토지개혁을 다 하고는 절에 땅이 하나도 없다.
부처님께 마지 올릴 밥도 쌀도 없고, 노승이 병이 나도 죽 한 그릇 쑤어드
릴 수 없다. 땅을 돌려받아야겠다. 또 젊은이들을 모조리 징병을 해서 데
려가니까 쌀도 없는 데다 지붕이 썩어내려도 못 고친다.”고 했어요.
내가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소리 했는지 모르겠어요. 내 분명히 그 소리
를 했거든요. “절이 모두 문화재인데, 만들긴 불교계에서 만들었지만 그 뒤
엔 어찌 불교계의 것만 되느냐. 국가가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깐 그 사람들도 그걸 적어 가지고 가서 검토해 보겠다고 그래요.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물었어요. 미군들이 와서 도량에 다니면서 별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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