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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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말하자면 내가 그 절과는 맞지 않다는 소리였어요. 그래서 운허스
          님한테 편지를 했다고 그래요. 그러더니 내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면서 내
          가 운허스님 상좌라고 그래요. 당시 나는 뭐가 뭔지 몰랐어요. 그렇게 해

          서 이듬해인가 중이 되었어요.

           하여튼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아무튼 그때는 내가 나름 영리했어요.
          재齋 지내는 걸 보고 소리도 따라 하고, 불공도 할 수가 있고, 지붕에 올라
          가서 기와도 고칠 능력이 생기고, 부엌에 가면 반찬도 하고 그랬어요. 그

          러다가 그 이듬해에 6.25사변이 터졌어요. 돌아보면 그때는 참 철이 없었

          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이 삼팔선 근처인데 전쟁이 터졌으면 쫓아
          가서 구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은 못 하고 거기 눌러 있었어요.



            낯모르던 스승 운허스님과의 상봉



           『능엄경』의 대의를 한문으로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화방사에 눌러 있다가 보니까 돈도 곧잘 생기고, 날 보고 스님이라고 그

          랬지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럴 것이 아니라 ‘나도 어디 큰 데로 가 봐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침 육지에 있는 스님들이 저더라 자꾸 오
          라고 그래요. 그렇게 해서 그곳을 훌쩍 내버리고 범어사로 갔어요. 그때는
          6.25 사변 난 뒤였어요. 피난 온 스님들이 백여 명 모여 있었고, 운허스님

          이 거기서 강의하셨어요.

           그런데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능엄경』을 우리말로 해주시
          는데 불경이 그렇게 어려운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엄청 어려웠어요. 그
          래도 한문으로 된 내용을 보고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들었어요. 그런데 스님

          이 어느 날 시험 문제를 냈어요. ‘『능엄경』이 생긴 동기를 아는 데까지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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