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P. 162

사진 6.  1967년 도쿄교육대학 일본사학 전공 입학식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2번째가 이에나가 사부로.


          이라는 피상의 차원에 갇혀 있는 사상으로 평가절하했다. 심지어 국체國

          體와 천황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나가의 사상의 근저에는 불교와
          독일의 관념론, 마르크스주의, 기독교 등 여러 흐름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
          데서 신란의 불교가 가장 뚜렷하다.

           이에나가가 일본불교의 계보를 ‘쇼토쿠태자→가마쿠라 불교’로 바라보

          는 시각은 하나야마 신쇼와 동일하다. 가마쿠라 불교를 일본불교의 최정
          점에 올려놓은 점 역시 두 사람의 공통된 시각이다. 하지만 이에나가가 일
          본불교의 본질을 부정의 논리를 통한 ‘보편성’으로 봤다면, 하나야마는 ‘고

          유성’으로 바라본 점은 이들의 상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에나가가 펼친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진리는 동서양의 많은 연구자
          가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 발 나아가 세부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이에나가는 일본 이외의 다른 불교 수용국가들이 보편적 진리를 어떻게 수

          용했는가에 대한 논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앞에서 그가 자신의 논문에서

          모든 것을 부정했다고 언급한 것처럼, 그는 중국의 문화를 부정의 논리로
          전개하려는 능력마저 부정했다. 결국, 불교를 통한 보편적 진리에 접근하
          고 수용한 이들은 아시아에서 일본뿐이라는 암묵적 용인과 ‘특수주의’라는

          한계성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160
   157   158   159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