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2년 11월호 Vol.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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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편승·영합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생생한 현실사회에
                  등을 돌리고 오로지 지상의 세계를 넘어서 절대적 세계에 눈을 돌
                  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쟁의 본질을 올바르게 통찰하고

                  있었던 까닭이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우연한 결과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말로 ‘논포리’로 전쟁을 겪었기
                  에 침략전쟁을 인식할 능력은 없었다.” - 회고록 『전쟁책임』(1985) 중에서



               이에나가가 논포리 입장과 함께 종교에 심취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

             니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탓에 인간의 유한성
             을 자주 통감했다. 전문 학문을 선택할 즈음, 나의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더욱 깊어졌다. 강하게 마음을 끌었던 것은 이겨내

             기 어려운 인간의 유한성과 죄업에 대한 고뇌의 소리였다.”고 언급했다.

             불교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고대나 중세사상으로 돌아가 그
             사상의 샘에서 나의 정신세계의 뿌리를 다시 살펴보려 했다.”고 불교 연구
             에 들어선 계기를 밝혔다.




                부정의 논리



               이에나가가 일본불교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쇼토쿠태자聖
             徳太子였다. 이에나가는 대표적 쇼토쿠태자 연구자인 하나야마 신쇼와 공

             동연구를 할 기회도 얻었지만, 그 결과물은 하나야마와 달랐다. 하나야마
             가 쇼토쿠태자 연구를 통해 일본불교의 본질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면,
             이에나가는 부정否定의 논리였다.

               이에나가가 주장한 부정의 논리를 요약하면, 부정의 논리란 일본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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