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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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등을 가르칠 수 있는 교원이 부족
하게 되었다.”라며 불서강의를 개설한
이유를 밝혔다. 다시 말해 히로유키의
판단에는 불교의 대중화나 불교를 학
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함보다는 서구
학문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
하는 일본의 전통을 가르칠 필요가 있
다는 생각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인도철학은 중국, 동양철학과 함께
사진 4. 가토 히로유키. 사진 위키피디아.
1900년까지 지속된다. 이때 강의를 담
당했던 이들이 탄잔을 비롯해 요시타니 가쿠주, 무라카미 센쇼, 마에다 에
운, 다카쿠스 준지로, 도키와 다이죠, 호리 겐도쿠, 기무라 타이켄 등이었
다. 이들은 향후 일본의 제국주의 입장에서 국가불교의 역할을 전개했는
데, 탄잔이 발탁했거나 탄잔의 강의를 들은 이들이었다. 즉, 일본불교가
국가불교로서의 역할론을 주창한 배경에는 하라 탄잔이라는 시발점이 존
재한다.
1906년 인도철학은 강좌명이 변경돼 인도철학종교사로 개설되었다. 이
교과목의 개설로 인해 일본에서 인도철학이라는 학문이 출발했다는 평가
를 받고 있다. 학문적 출발과 달리, 학과의 독립은 1917년에 이루어진다.
실업가 야스다 젠지로安田善次郞와 임제종 승려 샤쿠 소엔釋宗演의 기부에
의해 인도철학 강좌가 1917년, 1921년에 개설되고, 1926년에는 국비에 의
한 인도철학이 재개설되었다.
이후 1932년 인도철학과 범문학를 합병해 인도철학범문학과라는 독립
적 학과가 설립된다. 인도철학범문학과의 탄생에는 하라 탄잔의 ‘불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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