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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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에는 그가 존경하던 장태염 등 재가 불교인들
             도 많이 참여하였다. 각사는 불교개혁운동의 근거
             지로서 불교 수행과 연구, 그리고 불교 잡지를 간

             행하는 일을 주된 업무로 삼고자 하였다. 1920년

             에는 각사에서 발간하던 『각사총간』을 『해조음海潮
             音』으로 개칭하였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사진 8. 왕성할 활동을 펼친 태허.
             된 불교 간행물로서 현재도 대만에서 출간되고 있

             다. 근대 한국불교 지식인들도 한두 권씩은 다 보았던 잡지로서, 『해조음』

             은 당시 시대 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논의를 전개하며 불교계몽을
             전면적으로 이끌었다.
               중국 학자들은 태허를 유럽 종교개혁의 선구인 마르틴 루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태허의 불교개혁운동을 마르틴 루터의 카톨릭 비판과 신교

             수립만큼이나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1913년 경
             안스님의 추도회에서 기존 승단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불교계의 혁명을 주
             장하였다. 당시 유명한 삼대혁명이 제기되었는데, 이른바 ‘교리敎理 혁명’,

             ‘교제敎制 혁명’, ‘교산敎産 혁명’이 그것이다.

               불교 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 승단 제도에 대한 개혁, 불교계 재산의
             합리적 관리 등에 관한 것으로, 불교계에 제기된 가장 강력한 자기반성이
             자 개혁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삼대혁명의 발표 이후 중국 불교계에서는

             논란이 뜨거웠고 보수파에서는 태허의 주장을 마귀의 학설이라고 맹폭하

             였다.


             *   이 글은 김영진의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와 김명호의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
               대』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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