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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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1636년에는 근대 철학
과 과학문명의 문을 본격적으
로 열어젖힌 천재 데카르트
(René Descates, 1596~1650)가
『방법서설方法序說(Discourse on
the Method)』을 출간하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제1원
리’로 인류의 머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눈을 떠라! 허황된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사진 6. 정종섭 서 백곡처능선사비.
시간이 지났다. 봉은사 주
지인 원명元明 대화상으로부터 백곡처능선사비를 봉은사에 세우는데, 비
의 전면 글씨를 써달라는 전갈傳喝이 왔다. 다시 『백곡집白谷集(=대각등계
집大覺登階集)』을 읽어 보고 고민하였다. 백곡화상은 불교의 대선사이기도
하지만 대학자이기도 하다. 박학다식, 명징함, 삼교회통, 논리적 완벽
성, 곁을 내주지 않는 엄정함, 지식을 초월한 초월지, 앎과 행의 일치. 이
러한 점들로 선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글씨는 그러한 점들이 스며 있도
록 써 보았다. 이렇게 하여 천학비재淺學菲才한 후학의 둔필鈍筆로 ‘호법
성사대각등계護法聖師大覺登階 백곡처능대선사비명白谷處能大禪師碑銘’이
라고 비표碑表를 썼다(사진 6). 이 비는 봉은사의 비들이 있는 곳에 보우대
화상의 탑비 옆에 서 있다.
백곡 대선사의 부도는 그가 입적한 김제의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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