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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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았다. 원래 남면하는 임금을 부처 밑
             에 두는 것이므로 당장 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효종은 바로 봉은사에

             있는 선왕의 위패를 철거시켰다. 선왕의

             위패가  없어졌으니  봉은사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문인 묵객들이 다투어 시로
             읊었던 거창했던 원래의 봉은사 당우들

             은 이미 1636년 병자호란 때 완전히 소실

             되어 사라졌고 방만 몇 칸 남아 그 이후
                                                    사진 1.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  선
             경림敬林 화상이 몇몇 건물들을 새로 지                       사 진영.
             어 놓은 형편이었다.

               드디어 효종이 죽고 현종顯宗(재위 1659~1674)이 즉위하자 다음해 조정에

             서는 전국에 있는 원당願堂의 철폐를 공론화시켜 결국 원당을 철폐하고 불
             교와 왕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승려들은 환속시켰다. 이해에 천

             하의 벽암각성 대사가 생의 인연을 다하고 영겁회귀의 세계로 떠났다(사진
             1). 그리하여 속세에서 벌어지는 그 다음 장면은 보지 못했으니 차라리 편

             했으리라. 그리고 다음 단계로 1661년(현종 2)에 도성 내의 비구니 사찰인
             자수원慈壽院과 인수원仁壽院을 완전히 해체했다. 40세 이하 비구니는 환속
             시켜 시집가게 하고, 40세 이상 비구니는 도성 밖의 절로 쫓아내 버렸다.

               원래 인수원은 태종의 후궁들과 궁녀들을 머물게 하면서 시작되었고,

             자수원은 세종의 후궁들과 궁녀들을 살게 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왕을
             잃은 후궁과 궁녀만큼 불쌍한 존재도 없으리라. 돌아갈 때 없고 보살펴주
             는 사람이 없는 처지로 이러한 곳에 모여 종년終年까지 살다가 인생을 마

             감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기도하며 마음을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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