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3년 2월호 Vol.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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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하면 이 생의 인연을 접고 삭발 비구니로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물러난 후궁들과 궁녀들이 날로 넘쳐나면서 자수원과 인수원은
          도성 내의 큰 비구니 사찰이 되었다. 불교를 없애려면 왕실과 연관이 남아

          있는 이것부터 없애 버려야 했다. 자수원을 해체한 목재를 봉은사에 보낼

          것인가가 논의되었을 때 송준길 선생은 이것도 못 하게 강력히 저지하였
          고, 결국 3년 후에 성균관의 부속 건물을 짓는 데 썼다.
           공격하는 입장에서 보면, 일찌감치 함포 사격으로 주요 거점은 없애 버

          렸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선종의 수사찰과 교종의 수사찰을 찍어 없애 버

          리고 승려들도 환속시켜 버리면 불교는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새 임금이 출범하자 그간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 속에 이골이 난 인간들
          이 서슬 시퍼런 칼을 들고 나선 상황이다.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가는 보우

          화상이 당했듯이 당장 그 자리에서 ‘두들겨 맞아 죽을’ 상황이었다.

           불법佛法을 위하여 죽을 것이냐 땅바닥에 기면서 생명을 부지할 것이냐?
          차라리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는 것은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니 무상보
          시無相布施로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상황은 인간들의 권력놀음으로 초

          래된 강요된 물음이기에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리라.



            백곡처능 선사가 목숨을 걸고 쓴 「간폐석교소」



           그렇지만 모두가 겁에 질려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옳고 그

          름을 말해야 하는 것이 ‘정언正言’이 아니겠는가. 이때 죽기로 결심하고 떨
          쳐 일어나 임금을 상대로 옳고 그름을 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백곡처
          능白谷處能(1617~1680) 대선사였다! 처절한 현실 앞에서 이미 삶과 죽음의

          강은 지났다(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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