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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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에 대한 그릇된 견해
게다가 견성한 사람이 앉는 좌석에 견성하지 못한 쪽 못지않게 많은 사
람들이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견성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 하도 신기
해 “당신 정말로 견성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스승으로부터 인가
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인가받았냐고
2)
되물었더니, 자기는 스승으로부터 점검을 받고 무자화두無字話頭 를 참구
해도 된다고 허락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 “무!” 할 줄 안다고
대답하더란다.
그러니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견성한 사람과 견성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
는 “무!” 할 줄 아는 사람과 “무!” 할 줄 모르는 사람의 차이였던 것이다. 이
는 일본 사람들이 가르치고 있는 선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어처
구니없는 현상들이 현재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국 선방에 견성 못한 사람이 도리어 드문 것이 현재 한국불교의 실정
이고, 이 자리에 앉은 선방 수좌들 역시 나름대로 견성에 대한 견해를 한
가지씩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흔히 참선하다가 기특한 소견이 생기면 그
것을 두고 “견성했다”거나 “한 소식 했다”고들 하는데 정작 만나서 살펴보
면 견성하지 못한 사람하고 똑같다. 과연 무엇을 깨쳤나 점검해 보면 제 홀
로 망상에 휩싸여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견성에 대
한 그릇된 견해와 망설은 자신만 그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선종의 종
지宗旨를 흐리고 정맥正脈을 끊는 심각한 병폐이다. 『선문정로』를 편찬하면
서 첫머리에 ‘견성이 곧 성불’임을 밝힌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선문의 대표적 공안公案 중 하나.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에게 어떤 이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없다[無]”고 대답한 일화에서 유래한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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