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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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기러기는 하늘 끝까지 울며
                  가는가   5)



               깊은 밤, 산사山寺에 말없이 앉아

             있으면 얼마나 적막하고 쓸쓸할까
             요. 하지만 그 적막하고 쓸쓸함은
             고요한 적멸일 뿐입니다. 그냥 ‘있

             는 그대로’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생존을
             향한  욕망이  일어나자마자  근심
                                               사진 10. 언어를 떠난 무념의 산길.
             걱정이 적멸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근본 무지로 말미암은 어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람’과 ‘기러기’는 아집과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무
             명은 잠재의식의 암흑이고 카르마의 암흑이라 살아 있는 한 쉽게 없어지
             지 않습니다.




                천층千層 만첩萬疊 희양산


               아침 6시에 식사하고 봉암사 경내 부도들을 볼 겸 산길을 걸어봅니다.

             화장실과 종무소 사이로 난 산길을 올라가면 동암이 나옵니다. 동암의 우

             측 길로 가면 각종 부도와 탑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봉암사 명예의 전당과
             같은 곳입니다.


             5)  冶父道川, 「金剛經註」, 莊嚴淨土分 偈頌, 『金剛經五家解』,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
               西風動林野 一聲寒雁淚長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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