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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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場’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왼쪽 방에는 큰스님의 법구가 모셔져 있고,
그 한 켠 작은 방 책상 위에는 원적 직전까지 보시던 필사본 사기私記와 스
탠드, 컴퓨터, 안경 등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긴
세월 저편으로 홀리듯이 끌려 들어갔습니다.
소납은 성철 종정 예하의 지시로 ‘선림고경총서’를 1988년 9월 25일에
1권을 발행하여 1993년 7월 30일 『벽암록』 하권 초판을 발행하며 전 37
권을 완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종용록』은 32권, 33권, 34권으로
월운 대강백 큰스님께서 친히 번역해 주셨습니다.
처음 선서 번역을 기획할 때는 “전국에 강주스님들이 계시니 그 스님들
을 찾아뵙고 선어록 번역을 부탁드리면 되겠지.” 하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성철 종정 예하께서 선정해 주신 선어록 서목書目을 들고 몇몇 강주스님들
을 찾아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일은 영 엉뚱하게 흘러
갔습니다.
“우리는 경전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으뜸으로 하지 선어록 번역은
우리들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른 강주스님들도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니 찾
아다니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혹시 번짓수를 잘못 알고 찾아뵈었나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낭패가 아
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식 높은 강주스님들을 더 이상 찾아뵙지 못하
고 역경譯經을 하는 분들을 찾고 물어서 선서 번역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종용록』은 『벽암록』과 함께 선문의 쌍벽을 이루는 책이라 정말
어느 분에게 번역을 의뢰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고심 끝
에 1989년 봄인가에 봉선사로 월운 대강백 큰스님을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께서 주신 선어록 목록 중 대부분은 번역자를 찾
아 얼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종용록』만큼은 꼭 스님께 부탁을 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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