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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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계기는  관동대지
             진과  관련이  있다.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이 대

             참사로 인해 사람들은 생

             필품과 함께 물이 가장 부
             족했다. 카이운은 고통받             사진 2. 카루피스 음료. 사진 : 아사히음료 주식회사.
             는 사람들에게 물을 대신

             해 카루피스를 무상으로 배급했다. 신문들은 지진 관련 기사들을 보도하

             면서 함께 카루피스의 이야기를 실었다.


                  “죠조지增上寺 건너편에서 쌀뜨물 같은 액체를 배급하고 있다. 무

                  엇인가 하고 다가가 봤는데, 그것은 얼음을 넣은 카루피스였다. 광

                  고라고 할지라도 너무나 감사했다.”
                                                - <오사카 매일신보>, 1915년 9월 3일



               이 사건을 계기로 카루피스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관동대

             지진은 수천 명의 조선인 학살이 이루어진 우리에게는 쓰라린 역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다. 훗날 이때의 행동에 대해 카이운은 『아함경』을 인
             용해 “모든 행위에 결실이 맺히는 것은 사욕을 벗어난 근본에서 생긴다.”

             는 말로 대신했다.

               다른 하나는 디자인의 효과가 컸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독일
             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일본의 1엔이 독일에
             서는 1조 마르크라는 이야기와 함께 예술가들이 가장 힘든 상황이라는 이

             야기를 듣게 되었다. 카이운은 독일 화가들을 대상으로 카루피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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