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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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5호 |                    고우스님은 한국불교 역사에서
                은암당 고우스님의 수행 이야기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의미
                                               가 깊었던 해인사 선화자 수련법회

                                               를 잘 치르고 다시 태백산 각화사
             태백산 각화사에서                         로 돌아갔다. 이후 스님은 제방의

             선풍 진작을 도모하다                       여러 선원을 두루 다니시며 참선
                                               정진에 몰두했다.

                                                 1993년  무렵  고우스님은  출가
             박희승
                                               본사인 김천 수도암 선원으로 다시
             불교인재원 생활참선 교수
             유튜브 생활참선 채널 운영                    돌아가서  안거  결제에  들어갔다.
                                               당시 수도암은 해인사 주지를 지냈

                                               던 법전스님이 불사를 잘 하고 선

                                               원을 건립하여 수행 환경이 좋았기
                                               때문에 수좌들에게 인기 있는 수행
                                               도량이  되었다.  수도암  선원에서

                                               정진하던 어느 날, 뜻밖에 봉암사

                                               소식이  들렸다.  고우스님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봉암사’라는 말만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박희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그만큼 봉암사에 애정이 깊었던 것
               20여 년간 종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우
               스님을 만나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통           이다.
               독하고 불교의 핵심인 중도에 눈을 뜬
               뒤 화두를 체험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가운데
               불교인재원에서  생활참선  프로그램을            희양산문으로 개산한 봉암사는 일
               진행하고, 유튜브 생활참선 채널을 운
               영하고 있다.                         제강점기를 맞아 쇠락하여 겨우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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