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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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 실수였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그러니 봉암사 결제 수좌 3분
의 1이 남아 재방부를 들이게 되었다.
고우스님은 조실 서암스님께 수좌 대표와 협상과정을 다 보고 드리고,
조실스님의 승낙을 얻어 합의를 했다. 문제는 수좌 일부가 다시 봉암사에
남게 되자 조실스님은 고우스님이 수습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여 두 분의 관
계가 서먹서먹해졌다. 고우스님은 공심으로 결제 중에 나와서 조실스님과
수좌들의 갈등을 중재하여 합의로 원만하게 마무리했는데, 조실스님이 오
해하시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1993년 11월 성철 종정께서 입적하시고 그 뒤를 이어 서암스님이 종정
이 되셨다. 그러나 1994년 봄에 갑자기 종단 개혁불사가 일어나 전국승려
대회가 열렸고, 당시 총무원장과 같은 입장에 섰던 종정 서암스님이 위태
롭게 되었다. 그때 고우스님은 통영에 있었다. 그 와중에 다시 수습에 나
설지 말지를 망설였지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망설이지 않
았겠지만 봉암사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결국 전국승려대회가 열려 종정 서암스님이 탄핵당하는 조계종 역사에
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 뒤 노장은 태백산 토굴에서 만행하는 등 초
야에서 떠돌다가 시일이 흘러 2001년에 봉암사 수좌들이 다시 조실로 모
시게 되었다. 그때 서암스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고우스님
은 그동안의 인연을 정리하고자 병원으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자 노장은
아무 말 없이 고우스님의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출가 이후 은사처럼 따랐
고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당대의 선지식 서암스님과의 인연은 그
러했다. 아마도 고우스님이 출가 이후 은사보다 더 가까웠던 서암스님과
의 인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우스님은 노년에 인생을 살아보니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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