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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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다솔사 안심료. 1930년대에 지은 단층의 요사. 1919년 3·1독립선언에 참여했던 한용운 스님이
이곳에 2년간 은거하며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만당을 조직해 한국불교의 법맥을 이은 유서 깊은 장
소이다.
에 동정일여에 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1930년대 초 해인사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청년 이영주가 해
인사를 방문할 당시 해인사는 고경스님이 주지를, 범산 김법린이 강주를,
효당 최범술이 총무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원사로 청년 이영주
를 만나러 갔던 효당 최범술(1904~1979)은 동경 유학 중에 범산 김법린 등
과 함께 불교계의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만당卍黨’의 주동인물로 항일투쟁
을 했습니다. 귀국해서는 다솔사 주지 소임을 맡으니, 다솔사는 경남 일대
의 독립운동 본거지로서 만해 한용운, 범산梵山 김법린(1899~1964) 스님 등
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모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는 장소가 되
었습니다. 다솔사의 불교 강원은 1935년 9월에 해인사 강원과 통합되어 개
량된 형태로 유지되고 만당 당원들이 공식적으로 생활하고 활동할 수 있
는 터전을 제공하였습니다.
만당의 주요 활동은 1930년대 불교계의 핵심 현안인 정교분리와 교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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