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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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불교의 대 학장學匠 쫑카빠(Tsongkhapa, 1357~1419) 스님은 『보리도
          차제론』에서 정진精進 바라밀다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간과 출세간의 성취
          는 모두 정진에서 이루어진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Kekulé, 1829~1896)에게서 정진을

          통한 세간적 성취의 한 예를 봅니다. 벤젠(Benzene)이라는 탄소 화합물이
          있습니다. 향기를 내뿜는다는 의미의 방향족芳香族 소속의 분자입니다.
          1825년 페러데이(Faraday, 1791~1867)에 의해 분자식이 C6H6인 벤젠이 발

                               견되었지만, 그 기하학적 구조는 미궁 속에 있었

                               습니다. 케쿨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밤낮으
                               로 고민하던 중에 난로 옆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
                               데, 꿈속에서 자기 꼬리를 문 뱀의 모습을 보았
          벤젠의 분자구조와 발견한 꼬
          리를 문 뱀.              고, 이에 착안하여 여섯 개의 탄소가 육각형의 고

          리 모양으로 맞물려 있는 벤젠의 기하학적 구조를 알아냈다고 합니다.
           벤젠의 분자식 발견 후 40년이 지난 1865년의 일이었습니다. 간화선 수
          행자가 화두를 소재로 삼아 동정일여를 거쳐서 몽중일여의 경지로 들어가

          는 것과 마찬가지로, 케쿨레는 벤젠의 기하학적 구조의 문제에 몰입하여

          밤낮으로 추구하다가 그야말로 몽중일여의 상태가 되어 과학사에 길이 남
          을 업적을 남겼던 것입니다.
           성철스님 열반 30주기를 맞이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실

          천할 수 있는 가르침으로,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의 관문을 일관

          하는 ‘몰입’의 정신을 들고자 합니다. 불교 수행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문화와 학문과 경제와 정치 등 여러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 창
          의적 해결을 위해 깊이 ‘몰입’하는 개개인이 늘어날 때, 우리 사회가 질적

          으로도 더욱 성숙해져서 세계 문명을 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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