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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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동산에게 전수하였다. 용성은 자신의 생명과 같은 계맥을 자신의 후
계자 지정 및 유훈 전달로 동산에게 전했다. 그래서 동산은 용성 사상을 계
승하여 다양한 행적을 남길 수 있었다. 또한 용성은 전법게문을 동산에게
주었다. 1939년에 전달한 그 게문에서 조계 정법을 동산에게 준다고 했다.
즉 용성의 법맥은 동산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성철의 봉암사 결사(1947~1950)는 용성의 만일참선결사회(1925~
1927)의 사상, 정신을 계승하였음도 유의해야 한다.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
자’는 두 결사의 공통적인 지향이었다. 이런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동산 법맥의 전승, 성철 법맥의 계보
성철 법맥은 용성–동산으로 이어진 것이 성철에게로 전승되었다. 여기
에서는 동산 법맥이 성철로 이어졌음을 살펴보겠다.
동산 법맥에 대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1965년 5월이었다. 그 당
시 동산은 1965년 4월 30일(음, 3.23)에 범어사에서 입적하였다. 범어사에
서 영결식을 마치고 조계종단 기관지인 <대한불교>에 동산문도를 충격시
킨 글이 기고되었다. 1965년 5월 16일 <대한불교>의 지면에 기고되었는
데, 오대산인으로 자칭한 법연의 글이다. 근대기 선불교의 중흥조인 용성
에게서 받은 법맥이 동산에게서 단절되었고, 동산은 전법제자를 한 명도
두지 못하고 입적했기에, 용성의 법은 동산에게서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성철은 법연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집필하고, 그를 <대한불교>
에 실으려 했다. 그러나 게재되지는 않았다. 성철이 쓴 그 글은 해월정사
(부산)에 보관되어 있다. 필자는 그것을 『동산대종사와 불교정화운동』(영광
도서, 2007)에 수록하였고, 천제스님은 『시월록示月錄』(뜨란, 2022)에 게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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