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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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사도 이만큼 자리 잡혔으니 다른 스
             님한테 물려주는 것이 어떠한지 생각했
             지요. 신도들이 아쉬워하고 반대도 했지

             만 교수로 간다고 하니 막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이 기회에 내 공부의 빚을 갚
             아야겠다고 한국행을 결정했어요.
               1982년 2월 말 경 개학하기 직전에              사진 12. 대학원 제자들과 지리산 방문(1993).

             왔습니다. 신분이 외국인이니까 장기

             체류를 허가받아야 했어요. 지관스님이 정릉 경국사 주지를 1년 쯤 했을
             때 나와 같이 있자고 했어요. 전 주지인 보경스님이 단청장이었는데, 생전
             에 쓰시던 단청용 목재와 도구들이 꽉 차 있는 헛간이 있었어요. 그 헛간

             방(환희당)에서 지금까지 30년 넘게 지냅니다.

               1982년 3월 1일부터 동국대학교 선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내가 동국대에 오기 1년 전에 승가학과가 선학과禪學科로 바뀌었어요. 선
             학과 2회 학생들은 선이회를 조직하여 오랫동안 모임을 하기도 했어요. 동

             국대 출근 이튿날 부교수로 발령받았어요. 동시에 정각원 원장 보직을 함

             께 받았어요. 이후 불교문화연구원장을 역임하고 또 일본 경도의 불교대
             학에 연구교수로 가기도 했지요.
               정년퇴직할 때까지 방학 중에는 해외에 나갔어요. 외국 생활을 오래 해

             봤더니 해외에 한국불교를 포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절감했

             거든요. 1996년 8월에 정년퇴임했지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82년 이
             래 부산 내원정사 석암스님이 요청한 약사여래법회를 32년간 주재한 것,
             오계파지五戒把持운동 국제본부를 한국에 설치한 것과 부산 화엄불교교양

             대학 등 여러 대학에 출강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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