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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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결정지은 한 권의 책으로 박종홍의 『한국사상사(불교사상편)』를 들었
는데, 철학도에게 식지 않는 열정과 영감을 주었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
하고 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의미 있게 결정지을 수 있을까? 나의 학문적 본
령은 한국불교철학이다. 열암 박종홍 선생이 한국학의 바람이 불던
1960년대에 《한국사상》에 연재하셨던 글들을 나중에 모은 것이 『한
국사상사(불교사상편)』(1972)이다. 당시 글을 접한 나는 젊은 철학도
로서 문장에 반하고 그 뜻에 매료되었다. “한국의 불교는 선을 위
주로 했지만 교종을 겸한 조계종이 전체적 주류를 형성해 왔고 그
와 관련하여 지눌과 같은 창의적이며 총명하고 지혜로운 고승을
낳았다. 우리는 이 지눌의 사상을 탐구 천명함으로써 한국불교 사
상이 어떤 점에서 특색을 발휘하고 있는지 밝혀질 것이라 기대한
다.”는 문장에서 결국 학위논문까지 쓰게 되었다.”
귀국 후 그는 1980년에 서울대 철학과의 교수로 부임했고 25년간 재직
했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철학계의 분위기는 서양철학이 중심이며 대
세였다. 서울대 철학과의 경우도 박종홍이 「한국사상 연구에 관한 서론적
인 구상」(1958)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한국철학 연구의 길을 일찍부터 개척
해 나갔지만, 유교를 비롯한 동양철학 관련 교수나 전공자는 소수에 불과
했다. 그렇기에 동양철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
랐다. 심재룡도 한국에서 동양철학 연구의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
았음을 인정하며 동양철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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