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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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오늘날의 백련사 도량 전경.


          화상을 스승으로 삼아 불교에 귀의하고 제자의 예를 갖추어 모셨다. 행호
          화상이 그런 효령대군에게 백련사의 중창을 도와줄 것을 청하자 대대적으

          로 나섰을 뿐 아니라 관리들도 적극 동참하는 바람에 빠른 기간 안에 옛날

          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그 뒤 성종 시기에도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시주
          를 많이 하였다.
           이 당시 절은 동원東院과 서원西院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동원에는 당우

          들이 거의 20동에 이르렀고, 서원에는 그 반 정도가 지어졌다. 동원에는

          만경루, 진여문, 대웅보전, 시왕전, 나한전, 극락전, 효령대군이 지내던 동
          전東殿(=오죽전烏竹田), 약사전, 관음전, 팔장전八藏殿(=판전板殿), 승당 등 전
          각들이 20동을 넘었다. 서원에는 명원루明遠樓, 팔상전, 청운당, 백운당,

          망월전望月殿 등이 있었다.

           행호화상은 최충의 후예로만 알려져 있고 일생을 알 수 없다. 초기에 천
          태종의 중심 사찰인 원주 각림사와 요절한 성녕대군의 능침사원인 고양 대
          자암大慈庵에 머물기도 했고, 두류산의 금대사金臺寺와 안국사安國寺, 천관

          산의 수정사水淨寺에 주석하다가 백련사에는 늦게 와서 주석하였다. 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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