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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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록璿源錄』을 정리했고. 우리나라 글씨들을 수집하여 『동국명필東國名
筆』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금석자료를 모두 모은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를
간행하여 금석학의 문을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선조의 대를 잇는 광해
군光海君(재위 1608~1623)은 선조와 공빈恭嬪 김씨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
이기에 인흥군과는 친형제가 아니다.
당시 종실의 큰 어른들이 글씨를 쓰고 새긴 것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이 불가에 귀의하여 1482년 나이 87세 때 이 절에 와서 동전東
殿에서 지낸 일과 백련사에서 왕실을 위한 수륙재를 지낼 수 있게 전답田
畓을 시주한 일 등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효령대군은 불심이 깊어 배불과
호불로 분분하던 조선 초기에 불교를 적극 옹호하고 평생 불사에 진력한
왕실불교의 중심인물이었다.
장차 세종이 되는 셋째 동생인 충녕대군忠寧大君(1397~1450)에게 왕 자리
를 넘겨준 맏형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이나 둘째 형 효령대군의 심경
이 어떠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후세에 아무리 형 둘이 동생에게 왕
자리를 양보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상한 행동을 하고 불가에 귀의했다고 하
지만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에게 물
어볼 수 없으니 그 심사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말이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로 들어서면 오래된 동백나무의 숲
속 부도림에는 여러 기의 부도탑이 있다. 사지에도 호설탑虎齧塔 이외에 무
명의 3기의 부도탑이 있다고 되어 있다. 절 인근에는 소년탑少年塔, 진지
탑鎭地塔, 총신聰信대사의 부도인 월인탑月印塔 등이 있었다. 산스크리트어
로 된 진언이 새겨져 있는 것도 있으며, 원구형의 부도탑도 있다. 현재의
부도림에 부도탑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
과 다른 곳에서 옮겨 놓은 것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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