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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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하는 근거가 되었다.
메일리 스코트는 매일 낮과 밤 버클리에 있는 집에서 운전하여 CNWS
로 가서 시위하고, 때로는 감옥에도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중생활처럼
보이는 삶을 계속했다. 그러다 마침내 1988년 1월 버클리 젠센터에서 일
본 조동종 계열의 비구니계를 받는다. 그녀는 기지 앞에 있는 고속도로에
서 중앙아메리카, 팔레스타인, 이란 등지에서 무기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의 이름을 새긴 흰 십자가를 들고서 많은 시간 걸으며 명상을 했고, 더 많
은 시간은 마티네즈 카운티 교도소의 노랑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끄
러운 TV 연속극 소리와 함께 수식관을 하면서 그녀의 조급함을 달랬다. 그
렇게 하면서 메일리는 문제의 핵심에 뛰어들어 열린 마음의 의도를 가지
고 중도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웠다. 브라이언 윌슨은 CNWS에 소송을 제기
하여 결국 승소했고, 많은 대화와 방법을 통하여 해군 당국은 그 과정에 더
욱 조심하게 되었다.
1990년 2월, 메일리 그룹은 토요일 밤 좌선회를 결성하였고, 그 지
역 불교평화단체는 일 년 이상 매달 한 번씩 토요일에 ‘마음챙김 명상
의 아침(Morning of Mindfulness)’을 지원하여 모두 둥글게 둘러 앉아서 비
가 오든 맑은 날이든 명상을 했다. 그들은 십자가를 들고 「자애경(metta
sutta)」을 끝으로 독송했다. 그들의 농성기도는 1991년 2월 걸프전쟁이
시작되면서 끝났다. 참석하는 사람 숫자도 점점 줄고, 더는 선로 근처
에 테이블도 그림도 기도를 위한 깃발도 없다. 무기를 실은 트럭이나
기차는 예전처럼 아무런 장애 없이 길을 통과하고 있다. 메일리 스코트
의 3년 5개월에 걸친, 기도와 함께 진행한 비폭력 불교평화단체의 시위
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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