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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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또 사리와 가사를 주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승으로부터 받은 사리
와 가사를 경주 황룡사 9층탑, 울산 태화사 탑, 양산 통도사 계단戒壇(수계
의식을 설행하는 장소) 등에 나누어 안치하였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불사리와 관련하여 목은 이색(1328~1396)의 「양주 통도사석
가여래사리지기」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 따르면 1377년(우왕 3)과 1379
년(우왕 5)에 왜적이 통도사까지 와서 불사리를 약탈해 가려 하자, 통도사
주지 월송月松이 불사리를 가지고 개경으로 가서 문하평리門下評理 이득
분李得芬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이득분이 임금에게 아뢰자, 태후와 왕비
가 개경 송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송림사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소식
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송림사를 찾아가서 기원하고 분신사리를 얻었다
고 한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조선이 건국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불교를 독
실히 신앙하였으므로 불사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즉위 5년
(1396) 2월 22일에 송림사에 봉안되어 있던 불두골·사리·패엽경을 가져
오라고 명하고, 도성 안 흥천사에 건립한 사리각에 봉안한다.
조선의 사리 857매를 명나라에 바치다
그런데 명나라 사신이 칙서를 들고와 불사리를 요구하므로 전국 사찰에
봉안되어 있던 불사리를 수집하여 황제에게 바쳤는데, 이때 통도사 불사
리도 포함되었던 것 같다. 우선 이와 관련한 1407년 『태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다.
<5월 14일> 신하를 나누어 보내서 각도의 사사寺社에서 사리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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