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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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년 5월에 명나라 사신 황엄과 기원이 조선에 소장된 사리를 구해 오
라는 칙령(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태종은 전국에 신하
를 파견하여 사리를 수집한다. 이때 전국에서 수집한 사리는 충청도 45매,
경상도 164매, 전라도 155매, 강원도 90매 등 총 454매였다.
명나라 사신들이 돌아갈 때, 태상왕 이성계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
던 사리 303매를 비롯하여, 태종이 소장하고 있던 사리 100(+α)매와 전국
에서 수집한 454매 등 총857(+α)매를 명나라 사신에게 보냈다. 앞서 언급
한 바와 같이, 태상왕 이성계는 1396년에 송림사에 봉안되어 있던 통도사
사리를 가져간 바 있다. 그렇다면 이때 과연 명나라 사신에게 보낸 사리
303매에 통도사 사리도 포함되었던 것일까? 명나라 사신 황엄은 1419년
(세종 1) 9월에 다시 조선에 와서 사리를 구해 간다.
전국에서 수집한 사리 550매를 명에 바치다
<9월 1일> 황엄이 부처님과 승려에게 공양하고 (흥천사) 사리각에
들어가서 석탑에 올라 사리를 열어 보고 직접 봉해 두고 돌아왔다.
황엄이 원숙 등에게 사리가 원래 있었던 곳을 물으니, “전하는 말
에 따르면 석가가 세상에 있을 때 치아에서 생겨난 것을 신라 승려
자장이 서역에 가서 문수보살을 뵙고 얻어 가지고 돌아와서 경상
도 통도사에 두었다고 합니다. 병자년(1396)에 우리 태조께서 가져
다가 흥천사 사리각에 두었습니다.”라고 하였다.
<9월 2일(2번째 기사)> 상왕(태종)이 이명덕, 원민생, 원숙 등을 시켜
황엄에게 고하기를, “석가 치생사리는 부왕(태조)께서 통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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