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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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법당 앞마당을 지나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습니다. 마당에서 넘
          어졌으니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그러나 혜원은 이 한 번의 넘어짐에서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문맹이기 때문에 마침 지나가던 한 선객에게 부탁해서 자기가 지

          은 게송을 벽에 적게 하고 바로 그날 훌쩍 떠났습니다. 동림사에서 소동파
          에게 무정설법無情說法을 가르쳐 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상총(1025~1091)
          은 이 게송을 전해 듣고 극찬하였습니다. “선객의 공부가 이와 같다면 무

          엇을 더 바라랴.” 사람을 시켜 혜원을 찾았으나 그가 어디로 갔는지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2)
           혜원이 지은 게송입니다.



              이 한 번의 넘어짐, 이 한 번의 넘어짐

              만 냥의 황금을 쓴다 해도 괜찮지
              머리에는 삿갓, 허리에는 보따리
              어깨에 멘 지팡이에는 청풍명월 매달았네             3)




           혜원은 한 번 넘어지면서 바로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요?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 한 번의 넘어짐에 만 냥의 황금을 쓴다 해도 괜
          찮다고 했겠습니까? 혜원은 넘어진 순간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게 거짓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넘어지면 어때! 못 생기고 문맹이고 굼뜨면

          어때! 나는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을! 그는 살아 있음의 참맛을 보


           『
          2)  續傳燈錄』, 卷第二十 : 慧圓上座開封酸棗干氏子 … 出游廬山至東林 每以己事請問 朋輩見其貌
           陋擧止乖疎皆戲侮之 一日行殿庭中忽足顚而仆 了然開悟 作偈俾行者書於壁曰 … 卽日離東林 衆
           傳至照覺 覺大喜曰 衲子參究若此善不可加 令人迹其所往 竟無知者.
          3) 『續傳燈錄』, 卷第二十 : 這一交這一交 萬兩黃金也合消 頭上笠腰下包 淸風明月杖頭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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