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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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과 그 개산조
그렇다면 ‘구선선문’ 즉 아홉 개의 산문은 무엇이고, 그 개산조開山祖와
법맥 계승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쉽지 않
다. 우선 나말여초 존재하였던 산문이 구산선문 이외에도 진감혜소의 쌍
계산문, 순지의 오관산문 등 4~6개의 산문이 존재하고 있고, 산문의 개
2)
조開祖와 실제 개산조開山祖 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신라의 스승
으로부터 법을 받은 제자가 다시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을 받아 온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나말여초의 선을 구산선문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학자들마다 이견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나말여초 선문이 아홉 개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한 이후 기존의 선종은 구산선문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견해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예를 들어 허흥식은 10세
기 말 모두 14개의 산문이 존재했으나 천태종 개창 당시 5개의 산문이 천
태종으로 전향하여 9개의 산문이 남았다고 주장하며, 최연식은 11세기경
구산문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여러 산문이 9개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고 주장하고 있다.
구산선문의 이름과 개조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선문조
사예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이다. 이는 선문의 조사들에 대한 예참 의례에
사용하는 의식문으로써 여기에는 예참의 대상으로 석가모니 이래 혜능까
지 33조사와 구산선문의 개산조 그리고 보조국사 지눌이 포함되어 있다.
2) 개조’와 ‘개산조’란 말은 불교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지산문의 경
‘
우 ‘도의’가 서당지장의 법을 받아 왔지만, 실제 가지산문을 개산한 것은 보조체징이다. 이에 대해 ‘개
산조’와 ‘개창조’로 나누어 부르는 학자도 있는데, 필자는 도의는 가지산문의 ‘개조’라 하고, 체징은 ‘개
산조’라 명명하여 이를 구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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