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P. 167
“다시 생각해 보건대, 중국에 들어가 배운 것은 대사나 나나 다 같
은데 스승이 된 이는 어떠한 사람이고 그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
람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어찌 심학자心學者는 높다 하고 구학
자口學者는 수고로움을 당해야 하는가. 그래서 옛날의 군자들이 배
우는 바를 신중히 하였던 것인가. 그러나 심학자는 덕을 세우고 구
학자는 말을 남기는 것이므로 그 덕도 말에 의지하고서야 전해질
수 있으며, 이 말은 또한 덕에 의지하여야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전해질 수 있어야 마음을 멀리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없어지지 않아야 말도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때에 하는 것이니, 어찌 다시 감히 실속 없는
글이라고 굳이 사양하기만 하겠는가!” 3)
낭혜무염과 최치원 모두 당대 최고의 천재로 당에 들어가 이름을 크게 떨
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선사인 무염국사는 왕의 스승이 되어 추앙받고,
유학자인 최치원은 왕의 신하가 되어 왕명으로 무염의 비문을 짓고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어찌 심학자는 높다 하고 구학자는 수고로움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말에는 아니꼬운 최치원의 심사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최치
원은 “덕은 말에 의지해야 전해질 수 있고, 말은 덕에 의지해야 보존될 수 있
다.”는 말로써 선사와 유학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3) 崔致遠撰, 『大朗慧和尙白月葆光之塔碑銘』. “復惟之 西學也彼此俱爲之而爲 爲役者何人. 豈心學
者高 口學者勞耶. 故古之君子 愼所學. 抑心學臼 善則善矣. 然苟不能是 惡用黃金爲 爾勉之. 遽出
書一師者何人心者立德 口學者立言. 則彼德也或憑言而可稱 是言也或倚德而不朽. 可稱則心能遠
示乎來者 不朽則口亦無慙乎昔人. 爲可爲於可爲之時 復焉敢膠讓乎.”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