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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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김영수의 일련의 논문을 통하여 ‘오교구산’, ‘오교양종’, ‘선종구산’
등의 용어가 신라말에서 고려시대까지 선종을 이해하는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종파를 통하여 한국불교사를 이해하고자 한 김영수는 “교종의 종파로
‘열반·법성·계율·화엄·법상’의 오교가 있고, 선종의 종파로 구산선문
이 있어 서로 대립하여 오교구산이라 하였다. 이후 고려 숙종 대에 대각국
사 의천에 의하여 천태종이 선종의 일파로 개창됨으로써 이전의 구산선문
은 조계종(선적종)으로 통합되고 오교양종으로 변모되었다.”라고 주장하였
다. ‘오교구산(오교일종)’, ‘오교양종’을 통하여 고려불교를 이해한 김영수의
주장에 대해 1970년대 이후 불교학계에서 이론異論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
만, 한국불교에 대해 종파를 통하여 바라볼 수 있는 학문적 틀을 제시했다
는 점에서는 그 가치가 인정된다.
‘구산선문’·‘구산문’·‘구산’ 등의 용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종의 산
문이 개별적으로 형성된 이후 어느 시기 이를 ‘구산(선)문’으로 통칭하여 부
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 시기는 구산선문이 모두 형성된 광종 대 이후로 보
인다. ‘구산문九山門’이란 명칭이 최초로 보이는 사료로는 『고려사』 「세가」
권10 ‘선종 갑자 원년(1084) 정월 을사조’이다. 여기에는 “보제사 승려 정
쌍貞雙 등이 왕에게 구산문의 참학승도參學僧徒들도 진사과의 예에 따라 3
년에 한 번씩 선시選試를 치를 수 있도록 청하여 허락받았다.” 라는 기록이
1)
보인다. 또한 ‘달마구산문達磨九山門’ 혹은 ‘구산선려九山禪侶’ 그리고 ‘구산
선九山選’이란 용어도 보인다. 이러한 용례를 통해 ‘구산선문’이 광종 이후
불교 교단의 정비와 승과시험 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高麗史』, 「世家」 卷十, 宣宗甲子元年 正月 乙巳條. “普濟寺僧貞雙等秦 九山門參學僧徒 請依進士
『
例三年一試 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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