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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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람이 최치원이다.
                                                    그  이유는  구산선문에
                                                    관한  가장  중요한  1차

                                                    자료가 최치원의 「봉암

                                                    사  지증대사적조탑비」
                                                    이며, 다음이 그의 「성
                                                    주사  낭혜화상백월보

                                                    광탑비」와  「쌍계사  진

                                                    감선사대공탑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최
                                                    치원의 안내가 없이 구

                                                    산선문의 실체에 접근

                                                    하는 길은 불가능하다
                                                    고 말할 수 있다.
                                                      최치원이 처음으로

                                                    왕명을 받아 비문을 짓

                                                    기에 착수한 것은 885년
          사진 3. 고운 최치원의 초상. 사진 위키백과.
                                                    (헌강왕 11)에 시작한 「지
          증대사비」였지만, 제일 먼저 마친 것은 887년(정강왕 2)에 완성한 「진감선사

          비」였다. 「낭혜화상비」는 890년(진성여왕 4)에 왕명을 받아 897년 경(?)에 완

          성하였으며, 「지증대사비」는 893년(진성왕 7)이 되어서야 완성했다. 「지증대
          사비」와 「낭혜화상비」의 저술 기간이 7~8년에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치원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의 「낭혜화상비」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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