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P. 8
있었습니다. 음력으로 1월 4일~7일, 4월 12일~15일, 7월 12일~15일, 10
월 12일~15일로 동안거·하안거 결제 끝으로 법회를 해 오고 있었습니다.
1981년 1월에 큰스님께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으로 추대되시고는
그 기도 동참자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동참자들이 자꾸 늘
어나니 당시 백련암 방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마당에 천막
까지 치게 되었습니다. 1988년 5월 17일에 적광전 상량식을 하고 관음전
불사를 마치니 기도 공간에 숨통이 좀 트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눈 치우는 운력에 비지땀을 흘리고
큰스님 시자로 큰절(해인사)로 큰스님을 모시고 다니던 때, 큰스님께서는
그 가파른 희랑대 계단을 휘적휘적 쉽게 오르셨는데 뒤따라가는 소납은 오
히려 숨이 차 헉헉대면 휙 뒤돌아보시면서 “젊은 놈이 그리도 힘드나?” 하
시고 득의연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시던 큰스님께서 하루는 “내가 이제 늙었나 보다. 옛날에는 큰절 다
녀오는 것이 힘도 안 들고 날아갔다 올 것 같더니만 이제는 힘이 든다. 나
중을 대비해서 큰절에 다닐 수 있는 찻길을 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있는 자연환경의 손실을 최소한도로 하면서 길을 낼 수는 없을까 하고 하
루에도 몇 번씩 국일암 뒷길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랑대 밑 골짜기에 눈길을 멈추고 주위를 무심코 둘러
보는데 갑자기 길이 훤히 뚫려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숲을 헤치고 내
려오니 지금의 지족암 가는 갈림길까지 쉽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자세
히 보니 팔뚝만 한 잡목들은 있었지만 큰 소나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래서 자동차에게는 미안한 길이 되었지만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