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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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락천, 타화자재천)과 색계 18천, 그리고 무색계 4천의 총 28차원이 합해진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세계다.
이것은 불교의 수행이 나아가는 약도이기도 하다. 불교 수행자는 횡으
로는 중앙의 수미산을 향해 여러 산과 여러 바다를 건너는 경로를 걷고, 종
으로는 수미산의 중턱(사천왕천)과 정상(도리천)을 거쳐 다시 여러 층의 하늘
을 오르는 차원의 전이를 감행한다. 부처님은 최상의 하늘인 무색계의 제
4천(비상비비상천)까지 뛰어넘었다. 그것은 『서유기』의 손오공과 삼장 일행
이 걷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중 남섬부주에 살고 있다. 현재의 우주개념으로 보자면 남섬
부주는 대체로 지구에 해당한다. 그런데 돌원숭이는 동승신주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다가 남섬부주를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숭이왕은 외계
인인가? 그렇지는 않다. 동승신주를 출발로 삼은 것은 중국이 인도의 동
쪽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서유기』에서는 동승신
주東勝身洲의 몸 신身자를 신성할 신神으로 바꾸어 동승신주東勝神洲로 표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동승신주의 ‘신’은 원래 몸 신身자를 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체조건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사
는 땅을 신성한 세계(神州, 혹은 神洲)라고 불러왔다. 지금도 중국의 땅을 표
현할 때 신성한 세계, 위대한 땅[神州大地]이라는 말을 쓴다. 『서유기』의 작
가는 이렇게 중국이 인도의 동쪽에 있다는 점, 또 ‘신주’의 발음이 같다는
점 등에서 문학적 영감을 받아 그 표기를 신身→신神으로 바꿈으로써 중국
을 강조한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동쪽 중국에서 출발하여 서쪽 인도에 도
달하는 『서유기』의 전체 여정을 그리기 쉽다는 점도 고려되었던 것으로 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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