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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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의 발행으로 한국 불교학계에서 선종을 연구하는 불교학자들
의 거센 반격이 일어났습니다. 보조국사를 종조로 하는 송광사에서는
1983년 보조학회를 중심으로 학술회의를 하고 큰스님께 집중포화를 퍼부
었습니다. 특히 보조학회에서는 “보조국사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숭배하
는 국사의 자격을 가지신 분으로 우리 모두 존경하여야 하는 큰스님이시
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해인총림의 방장으로서 보조국사와는 지위를 다툴
수 없는 스님이 아니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스님 간의 학설의 내용
비교는 없고, 평민이 어찌 국사의 이론을 시비할 수 있는가가 주된 내용이
었던 기억입니다. 다른 학회에 가 봐도 학문 연찬은 없고 비판하는 내용은
매일반이었습니다.
“성철스님이 해인사 방장이긴 하지만 보조국사를 시시비비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그 후 20여 년 가까이 한국불교의 선학계에선 보조사상연구원을
중심으로 보조스님의 사상 연구와 성철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에 대한 비판
으로 매년 학회가 열리며 치열한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백련암과 성철사
상연구원에서도 그때그때 학술회의를 열어서 대응했으나 대부분의 불교
학자들은 보조스님의 돈오점수 사상에 익숙해 있고, 다만 몇몇 분들만이
큰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의 논의를 펼치는 데 그쳐서 소납은 늘 인재의 부
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철 종정 예하께서도 1993년 11월에 열반에 드시고 보조사상계도 한문
에 능통했던 일세대 학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불교의 돈점논쟁 법석도 점
점 줄어들어 조용하게 된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모처럼 학술회의나 모
임에서 7~80대가 되신 그때의 학자분들을 만나면 당시의 냉담함은 어디
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 서로 반갑게 손을 맞잡으며 “성철 대종사님 계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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