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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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體露眞常하여 불구문자不拘文字로다.”라는 백장선사의 법어를 외는 것
          을 듣고 단박에 깨달았다. 견해를 들은 고호는 “참되고 바른 견해”라며
          인가했다.

           그때 이 견해를 인정하지 않은 난포가 교토에 왔다는 사실을 들은 슈호

          가 인사하고 그를 따라 참선했다. 가마쿠라의 건장사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운문雲門의 관자關字’ 화두를 타파하여 일거에 대오했다. 난포는 슈호
          의 견해를 듣고는 “어젯밤에 운문대사가 내 방에 들어오는 꿈을 보았다.

          너는 운문대사가 다시 온 것이다.”라고 했다. 이후 20여 년간 초암을 짓고

          교토에서 걸식을 했다. 엄하기 이를 데 없는 수행 풍모로 인해 접근하는 사
          람이 없었다. 마침내 숙부의 귀의에 의해 대덕암大德庵을 짓게 되었다. 훗
          날 많은 명승들을 배출하고, 일본차의 진원지로 유명한 대덕사가 바로 그

          곳이다.

           준재들을 길러낸 난포는 본격적인 임제선의 세계를 일본에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산하대지, 초목수림, 눈에 들어오고 귀가 듣는 것은 공안이
          아님이 없다.”라는 그의 법어는 임제선의 선풍을 잘 보여준다. 난포의 시

          대는 남송에서 원으로의 교체기였다. 일본은 송나라와의 무역은 번성했지

          만, 원나라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갖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선승들이 그랬
          듯이 문물 교역의 전담자로서, 상대방 이익의 균형을 잡는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불조의 혜명을 잇고 계승하는 진리의 수호자로서 고난의 시기를 운

          명으로 알고 개척해 왔다. 난포 또한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는 어느 해

          석존의 열반일을 당해 상당하여 설했다. “불신佛身은 법계에 충만하다. 널
          리 일체의 군생 앞에 드러나도다.” 1309년 75세의 난포는 건장사에서 결
          가부좌하고 법신과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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