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4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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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 토끼가 지나가는 파도 위에 평탄한 길이 생겼다. 사람들은 배에
          서 내려 질풍노도의 양쪽 바다를 보며 걸었다. 하카타까지 이어져 그곳에
          도착했다. 마침내 흰 토끼는 금색의 모습으로 변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팔대용왕이 되어 사라졌다. 이 용왕은 불법의 수호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불심을 깨달은 승려들을 위호하는 민중의 마음이 투영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난포의 법력을 상징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포는 귀국 후 주로 규슈 각지에서 30여 년 동안 법을 선양하며, 9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엔니벤넨이 세운 숭복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임

          제선을 알렸다. 이 외에도 막부의 명에 의해 원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여 외
          교 사무를 맡기도 했다. 당시 중국과의 교류는 중국 유학승들의 능력을 활
          용했다. 중국 사정에 밝고, 언어와 문서작성에 능했던 때문이다. 1273년

          원나라 사신 조양필과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어록의 내용을 소개한다. “외국의 덕 높은 인사가 일본에 오니 서로 만
          나 담소하며 현묘한 도리를 토로하다.” “먼 이역이지만 길은 다르지 않고
          눈을 마주친 순간 도가 그곳에 있으니 그 위에 누가 있으랴.” 전통적으로

          촉목보리觸目菩提와 목격도존目擊道存의 세계는 도를 체득한 선승들의 기틀

          을 말한다. 도학을 삶의 목표로 두었던 인문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동아시
          아의 지智의 교류를 목격하는 듯하다. 또한 1274년과 1282년 몽고가 고려
          군과 함께 침입했을 때 그곳의 현지사령관인 쇼니시의 외교고문이자 가정

          도사를 맡기도 했다.

           그렇다면 난포의 선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훗날 임
          제종의 중흥조인 하쿠인 에가쿠(白隠慧鶴, 1686〜1769)가 체계화시킨 공안선
          의 기능을 일찍이 분석한 엔니벤넨의 사상을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에 있다. 하쿠인은 공안선을 법신·기관機關·언전言詮·난투難透·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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